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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하고 감성적인 서울의 면모1 - 거리의 의자들
대담하고 감성적인 서울의 면모1 - 거리의 의자들
길거리는 시대상을 드러낸다. 도로와 벽, 간판, 상점, 각종 사인물 등 도시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에 사회의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 중 거리에 나앉은 의자들에게서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진 서울의 인상을 읽어본다.
도시를 생태계 삼아 거리에 무방비로 존재하는 의자들. 비바람과 햇빛에 산화된 질감이 세월의 흔적을 증명하고, 표면을 한층 풍부한 느낌으로 만든다. 태생은 동일한 모습이었을 플라스틱 의자는 저마다 겪은 사연에 따라 이제 다른 낯빛을 띤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미감은 자연의 손길이 만들어낸 결과다.
덧씌워지고 칭칭 감긴 의자들. 망가졌지만 폐기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그러면 그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끈질기게 쓰임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거칠고 험난했던 사물의 일생을 상상하게 한다.
클래식 코드의 흔적. 시대와 시대가 겹쌓인 도시는 콜라주(Collage)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스타일도 국적도 출처도 알 수 없는 의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도시 풍경 속에 고요히 자리하며 평범한 거리 일부를 공상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서울의 골목길에서 발견한 시티 블랙. 검은색 의자들은 복잡하고 정돈되지 않는 노상의 잡동사니 사이에서 그림자처럼 숨어있다가 쓰임이 필요할 때 제 기능을 해낸다. 번뜩번뜩하게 유광 도장한 금속과 인조 가죽은 마구 써도 괜찮을 만한, 저렴한 마감재이지만 로 퀄리티(Low Quality) 특유의 느낌에서 B급 감성이 엿보인다.
아무렇게나 쓰면 어때서. 귀한 대접을 받지는 않지만 더없이 요긴한 의자가 길바닥에 있다. 버려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애장품도 아닌 의자들. 적당히 툭툭 만들어져 그냥 그런대로 쓸만한 취급을 받는 의자들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도심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의자들은 ‘서울’이라는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 이름 없는 조연이다. 어떻게 전개되냐에 따라 여러가지 내러티브(Narrative)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한 가지 의미와 문맥만 지니지 않는다. 누군가의 쓰임을 위해 존재하는 사물에게서 시대의 흐름과 도시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까닭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사물에게서 생동하는 문화를 읽어내고 새롭게 재해석해볼 흥미가 느껴진다.